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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가 상황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곳은 미국이다. 도산 위기에 몰린 자국 셰일가스 업체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이다.트럼프 미 대통령은 이미 3000만 배럴의 중동 석유를 사들이며 전략 비축유를 늘리는 중이다. 미국의 전략 비축유는 20억 배럴 규모로 알려져 있다.

이와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간 감산 합의를 종용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제로성장까지 감내 해야하는 러시아로서는 원유 증산 외에 달리 쓸만한 카드도 없다.

특히 러시아의 화살은 미국 셰일가스를 겨냥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한마디로 저유가가 뉴노멀인 시대가 열린다는 이야기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18일 중국선박공업협회 홈페이지에는 정체불명의 뉴스가 실린다.

이른바 원유 수입대국인 중국에 좋은 기회가 왔으며 이미 걸프 해역에 84척의 대형 유조선(VLCC)을 파견해 석유를 사들인다는 내용이다. 물론 가짜뉴스 논란이 일면서 사이트에서 사라진 상태다.

84척의 중국 VLCC(Very Large Crude Carrier)가 걸프만에 집결하기는 어렵다. VLCC는 통상 길이가 300m 넘고 30만 톤을 실을 수 있는 선박이다.

한 척당 300만 배럴의 원유를 실을 수 있으니 84척이면 1억6000만 배럴 수송이 가능하다.사우디아라비아에서 중국으로 수출되는 원유는 지난해 기준으로 하루 170만 배럴 수준이다.

이 배는 워낙 용선료가 비싸 길게는 10년 장기 용선 계약에 따라 움직인다. 상식적으로 쉬는 대형 유조선도 없을뿐더러 급하게 용선 계약을 체결하기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 뉴스 이면에는 중요한 정보들이 담겨있다. 우선 원유 수입대국인 중국은 저유가인 이번 기회를 즐긴다는 사실이다.

중국의 지난해 원유수입액은 1조6627억 위안(약 2375억 달러)이다. 전체 수입액 14조3162억 위안의 11.61%에 달한다.

수입하는 석유 종류별로 가격도 다르고 용선료와 보험도 고려해야 하지만 유가만 놓고 계산해보면 지난해 중국의 하루 원유수입량은 약 1011만 배럴이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떨어지면 하루 1000만 달러 이익이란 계산이다. 요즘처럼 배럴당 30달러 떨어지면 중국은 하루 3억 달러씩 버는 셈이다.

치솟는 대형 유조선 운임의 최대 수혜자도 중국이다. 유가가 폭락하면 수출하는 나라나 수입하는 나라나 다급해진다.

수출국은 수입국 항구까지 실고 가서 비싸게 팔려 한다. 수입국은 반대로 산유국에서 싸게 사려고 한다.

수출국이나 수입국 모두 VLCC 수요가 몰리는 배경이다. 선박중개기구인 포튼엔파트너스(Poten&Partners)에 따르면 유가 폭락 이후 사우디 국적 해운사인 바하리가 확보한 VLCC만 25척이다.

수요가 몰리니 VLCC 용선료와 운임도 올라간다. 시웨이(Seaway)해사뉴스에 따르면 VLCC의 하루 용선료는 3월 중순 21만 달러다. 한 달 전보다 6배나 오른다.

VLCC를 가장 많이 보유한 중국으로서는 꿩먹고 알먹기다. 자오상룬촨(招商轮船)은 VLCC 51척을 보유한 세계 1위 업체다. 이밖에 중웬하이(中远海) 중국석유 펑차오(岚桥)그룹 등에서 보유한 대형 유조선을 합치면 모두 120척에 이른다.

중국이 한국과 일본의 전유물이던 대형 유조선을 만든 게 2002년 이후다. 난퉁중웬가와사키선박(南通中远川崎船舶)에서 30만 톤급 대형 유조선인 웬다후(远大湖)를 만든 이후 2016년에는 중국 자체 기술로 대형 유조선을 건조한다.

최근 5년간 만들어진 대형 유조선의 3분의 1은 중국산으로 보면 될 정도다. 대형 유조선을 많이 만들다보니 운영하는 배도 많이지고 있다.

경제 성장으로 해외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특히 최근에는 저유가를 틈타 전략 비축유 확보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중국이 석유비축을 시작한 게 2003년 부터다. 2006년 10월에는 저장(浙江)성 저우산(舟山) 등지에 석유비축기지도 만든다. 중국의 전략 비축유 규모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현재 건설 중인 3개의 비축기지의 규모가 5억300만 배럴이라는 게 공식 발표의 전부다. IEA(국제에너지기구)의 규정에 맞추어 발표하는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9억 배럴 수준인 일본과 비교해도 중국의 전략 비축유를 더 늘릴 명분은 충분하다. 경쟁국인 인도도 사우디와 아랍에미레이트로부터 원유 수입을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석유 수입은 지난 2016년 64.2%에서 지난해에는 70.8%로 매년 상승세다. 여기에다 전략 비축유도 더 늘려야한다.

어디서 얼마나 들여와야 할 지가 고민이다. 원유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수요와 공급이다.

유가가 떨어진다고 한꺼번에 많이 살 수 없는 구조다. 한 번에 대량으로 원유를 구입하면 바로 가격이 올라가 버린다.

자국 석유 산업도 보호해야 한다. 석유 대외의존도가 높으면 에너지 안보상 위험하다. 싸다고 외국산 석유에만 의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중국의 원유 채굴 단가는 중동국가에 비해 비싸다. 유가가 폭락해 해외 구매로 대체하면 중국 내 유전을 폐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이야기다.

해외 구매 선을 정하는 것도 문제다. 중국의 전통적인 수입국인 사우디 외에 러시아나 미국기업도 전략적으로 고려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는 재정수입과 경제성장을 전적으로 석유에 의존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석유 수출이 전체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러시아도 이번 유가 폭락으로 3조루블 정도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나온다. 올해 제로성장을 막기 위해서라도 증산을 포기하지 못하는 배경이다.

미국기업에 대해서도 석유 구매 카드를 쓸 수 있다. 특히 셰일가스 생산 기업은 저유가로 심한 타격을 받는 중이다.

미국 셰일가스 대표업체인 체서피크에너지를 비롯한 대형 업체들도 채무압박이나 경영위기에 처한 상태다. 리스타드(Rystad)에너지 자료를 보면 미국의 셰일가스 투자는 올해 650억달러 감소할 전망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저유가는 이미 대세다. 저유가가 계속되면 석유기업은 박리다매를 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최대 구매자가 시장의 주도권을 잡게 된다. 사우디나 러시아 미국 석유기업 사이에서 꽃놀이패를 보유한 곳은 일단 중국이다.

그러나 이직 끝나지 않은 ‘코로나19’가 변수다. 따라서 글로벌 석유 전쟁의 최종 승자가 누구일지는 시장 추이를 더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문학 기자]